고 1, 수학시간에.

추억 2006/11/11 11:50
실제로 고1때 재량 수학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하필 그게 4교시도 아니고 5교시여서 수업 끝나고 바로 컴퓨터실로 달려가서 기억한 대로 적는데도 몇 시간 걸렸습니다.
(4교시였으면 점심시간에 했을텐데...)

'1학년 독어과 담임 S선생님'이 바로 이 수업시간의 선생님이자 저의 1학년때 담임이셨습니다.



5교시는 재량 수학이었다.
참, 어째서 영어선생님, 어제 '재량 수학하고 영어하고 바꾼다' 라고 얘기한 건지...
난데없이 정상 시간표로 한다는 얘기에 애들은 각기 자신들이 가는 교실로 갔다.

물론 나는, 우리 교실에서 하기 때문에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제일 앞자리로 옮긴 것 뿐... 하지만 이것이 엄청난 다행이었다.

아직은 우리 반 선생님이 인기가 많다. 재량 수학 반을 선정하는데, 전부 우리 반 선생님으로 몰려 경쟁률이 4:1!!!
하지만...
1학년 독어과 담임 S 선생님이라면 없는 인기가, 수학 과목 담당이라면 인기가 많다.
하지만 선배들은 아직 우리가 시험을 치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S 선생님, 무진장 차별 심해'
라고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선생님이 들어와서 한 말,
'뭐 얘기 해 주랴?'
대답은 당연히 '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텍사스 이야기 해 주세요!"
대부분이 이런 공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우리 반 선생님의 수학 강의를 들은 수리반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수학 시간에 워낙 얘기를 해 대야지.

"첫사랑 이야기 해주세요!"
어떤 남자애의 제안에 결국 선생님은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

"때는 1952년... 배경 설명이다. 에... 알쟈? 1950년 6월 25일에 6.25전쟁이 일어났는데... 모르겠쟈? 아, 태어나도 않았겠구만. 52년 7월... 전쟁에 많은 게 뭐냐?"

"거지요"
옆에 앉은 어떤 여자애가 대답했다.

"그래, 거지다 너 거지."

"와하하하..."
엄청난 폭소다.

"에... 거지가 많았는데, 그래서 시골에선 밥도 맘대로 못 먹었어. 밥 냄새만 맡고 거지들이 우르르르~~~ 몰려와 손벌리니까.
그런데 거지도 자리를 잘 잡아야혀. 저기 충장로(일명 충파, 광주 광역시의 번화거리) 같은데는 말여, 누가 자리 쫘~~악 잡아두고 하면 잘 벌어.
대신에 누가 거기에서 자리를 깐다... 그럼 바로 쫓겨나는 거여.

근데, 그 거지 중에... 거지가 말여, 키도 훤칠하고, 9척이여 9척. 옛날에는 척을 썼어. 6척이면 짧은 키고 9척이면 긴 키여. 근데 그 거지가 얼굴도 잘났고...
청계천 아냐? 옛날에 청계천 다리 밑에 거지들 많았어.
그래서 하도 거지가 많다 봉께, 아예 1동 2동을 나눠. 거지 1동 거지 2동... 아파트로 따지면 1동 2동 말여."

또 엄청난 폭소가 터졌다.

"에... 근데 그 거지가 이화여대 앞에서 구걸을 하는디, 옛날에 이화여대는 아무나 가는 데가 아니었어. 왜 옛날에 상류층... 상류층의 여자들만 가는데여. 그래서 요새처럼 몇천 명이 아니라 몇백 명 하고 그랬어.
그리고 요새처럼 4년을 다 끝내면 안 되능겨. 2년 하고 짤리는 게 가장 좋아."

"왜요?"
당연히 질문이 터진다.

"아 몰러. 어쨌건 2년쯤 되어 나오면 그 때가 주가가 가장 좋아(또 폭소다).
근디 이 거지가 이화여대 바로 앞에 따~~~악 자리를 펴고 왜 육법전서라고 아냐? 몰라? 하 나 참, 늬들은 뭘 아냐? 민법, 상법, 형법..."

"법이요?"

"그려. 그게 이만~치나(어깨넓이의 3/2정도 팔을 벌려봤다) 두꺼운디, 옛날에는 책이 다로 나온 게 아니라 다 묶어져 있었어. 그래서 그걸 다 외워야지 판사 되고 변호사도 되었어.

근디 이 거지가 그 두꺼운 책을 펴고 공부하능겨. 긍께 학생들이 지나가다가 '아, 거지도 저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구나' 하고 생각해 돈을 넣어주능겨. 근디 이 청년이 어찌나 영리한지, 옛날에는 돈이 원이 아니라 환이라고 했는데, 환. 그 동전을 깡통에다 넣으면 딩, 동, 댕(폭소) 소리가 나는데... 이쪽이 100환... 지금 한 10만 원 정도. 내가 수학적으로 계산해 봤당께(폭소). 소리만 가지고 몇 환인지 다 아능겨. 그래서 저녁에 일 끝내고 청계천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계산해 본 것과 모인 돈하고 계산하면 정확해! 하나의 오차도 없어.

자냐? 나 그만할까? 수업하자."

"더 해요!"
"더 해주세요!"
"너무 재밌어요!"
어떤 애가 자는 모양인 양 엎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수업하자는 얘기에 나머지 애들이 들고 일어났다. 결국... 이야기는 이어졌다.

"어느날, 이 청년이 계속 두꺼운 책을 보고 있는디, 계속 딩, 댕, 딩, 댕(멜로디처럼... 또 폭소) 하다가 갑자기 '쾅' 하능겨. 뭐... 핵폭탄 떨어지듯이. 긍께 이 청년이 돌아보려다가 체면상 보도 못하고 '저게 뭘까' 하고 계속 고민하능겨.

그래서 빨리 보따리 싸들고 청계천으로 돌아왔어. 와서 봉께 큰 복주머니가 있잖혀? 그 복주머니 속에 100환짜리가 수두룩해. 근디 그 속에 작은... 꽃 색깔의 편지가 있어. 근디 문제는 이 청년이 까막눈. 글자를 몰러. 책도 폼으로 보능겨.
그래서 옆에 글자 조금 아는 거지에게 물어봉께 내용이 이래."

내용은 너무 황당해서 기억이 안 나고, 대충 한 이대 소속의 귀한 집 아가씨가 거지에게 만나자고 한 것이다. 대신 준 돈으로 깨끗하게 씻고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입고 XX호텔 찻집으로 모월 모일에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긍께 연애 편지지. 이 청년이 즉각 깡통을 차 버리고 돈 들고 명동으로 가. 명동 가서 일단 뭐하겄냐?"

"옷 사입어요."
"고기 사 먹어요."
"목욕해요."

"그려. 목욕이여. 목욕을 하는디 어찌나 때가 박박 나오는가 아예 바가지여 바가지(폭소). 긍께 2박 3일을 목욕탕에서 보내. 씻고 나서 옷도 아주 좋은... 런던제 하얀 양복을 사 입고,  고기도 많이 먹구... 그래서 약속날이 되어 호텔로 가는데..."

"선생님! 그 때 호텔이 있었어요?"
한참 이야기 도중에 어떤 남자애가 질문한다. 나도 그 말을 듣자, 궁금했던 것을 말했다.
"그때는 6.25전쟁기간 아녜요?"

"아, 6.25 전쟁기간이냐? 야! 그땐 호텔이 없었다냐? 호텔들이 다 6.25 후에 생겼냐? 저기 조선호텔 같은 데는 옛날부터 있었다고. 근디 이 거지가 말여. 호텔로 가는디 가서 보니까 한 여자가 다가오는거야. 근데 이 여자가... 에... 뭐라고 해야 하나?"

한참동안 선생님은 아주 아름다운 여인을 표현하는 데 쓰는 말을 몰라 헤맸다.

"근디 이 아가씨가 상류층이여. 상류층에다가 이대 다니는 아가씨인디, 남자는 일자무식. 얘기가 되겄냐?"

"아니오!"

"잘만 돼. 왜, 상류층 사람들은 막 예의 갖추고 형식에 얽매이는 거 싫어하잖냐."

"에~~이"
모두 믿지를 않았다.

"여자는 계속 웃고만 있고 남자 혼자서 얘길 다~~~ 해! 그리고 밤이 되니까 둘이 많이 친해져서 다음에 또 만나자고 혀. 글구 계속 만나고 청년은 여자가 돈을 대 줘. 거지짓 하지 말라고. 여자도 이 여자가 원래 우울한 사람인디 얼굴이 많이 밝아진 거야.

긍께 이 여자 아버지가 궁금해하는 거야. 우울하던 딸이 많이 밝아졌다고, 비서를 시켜 조사좀 하라고 항께 비서가 와서 하는 말이 아가씨가 어떤 근사한 남자와 만난다고 했어. 긍께 이번에는 그 청년 뒷조사를 하라고 해..."

"엉망..."
"쿡쿡"
그 말을 듣자 대부분 쿡쿡 웃어댔다.

"출생 모름 생년월일 모름 이름 없음 부모 모름... 이렁께 여자 아버지가 화내는 거여. 그래서 딸에게 만나지 말라고 혀. 뭐냐! 수업할까?"

"아니오!"

"아니긴 뭐여! 저 남자애들 헤벌레(맛이 간 남자애들 표정 흉내. 완전 웃음바다) 해서..."

"재미있어서 맛이 간 거예요!"
역시 수적으로 다수인 여자들이 밀고 나간다.

"자, 이제 결말은..."

"벌써 결말이에요?"

"이 청년이 이제 돈이 끊깅께 다시 이대 앞에 가서 책 따~~악 펼쳐두고 거지짓 해. 근디 어느 날 한 찝차... 옛날엔 이런 차가 있었겄냐? 다 까만 찝차여. 어쨌건 그 찝차에서 누가 내려서 청년을 데리고 큰 집으로 가는디, 문이 엄청 많아. 어쨌건 안으로 들어가서 막 씻기고 잘 입히고...

그리고 나중에 그 여자... 이대 다니던 여자 아버지가 나와서 청년한테 말하는 것이 딸이 상사병이 나서 자네만 찾노라고 한 번만 만나게 해주겠노라고 혀. 그리고 방으로 데려가는데, 그 방 크기가 우리 교실(팔을 넓게 휘젓는다)만혀. 글구 침대가 알쟈? 얇은 천 걸린 침대. 그게 교실 반만혀."

"햐..."
전부 맛이 간 표정이다.

"근디 이 여자가 또 문제여. 완전히 얇은 잠옷 입고, 남자가 다가가자 이제 우리 못 만나니까 마지막으로 포옹해달라고 하능겨. 포옹이 뭔지 알어?"

"알죠!"
남자애들이 대답했다.

"어쩌겄냐? 여자가 포옹해달라고 하고, 남자는 얼굴이 빨개져서, 최대한 한답시고 세게 안았는디 갑자기 뭔가 부서지는... 여자 몸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나능겨. 깨 보니까,"

"꿈이었구만..."
애들이 다 수군거린다.

"배가 이~~~만혀갖고 깡통이 옆에 있능겨. 근디 청계천 물에다 자기 얼굴을 봉께 미남은 커녕 뒤룩뒤룩하고 작은 얼굴에 배는 이만~~~~큼(손으로 배 모양을 해 본다) 불러. 구걸한 밥 먹고 잠든건디, 자면서 깡통을 안고 자느라(모두 예상하고 폭소) 깡통이 찌그러져서 청계천 아래로 굴러간거여.
긍께 이 청년이 남산에 올라가서(기억이 잘 안나요...) 자기 인생 비관하며 죽어. 교훈이 뭐겄냐?"

"교훈이요?"
전부 약간 놀란 표정.

"왜, 뭔가 이야기엔 교훈이 있는 거 아니냐?"

"맞아요 맞아요."
"네 맞아요. 뭐든지 교훈이 있지요."
내가 말하자 H도 맞장구친다.

"인생 일장춘몽, 남가일몽... 아냐?"

"네."

"인생은 무의미하다 이거여. 몇시냐?"

"45분이요!"

"그냐? 글면 5분간 자라."

남자애들은 다 엎어지는데, 여자애들은 서로 마주보며 웃고 난리다.
그리고 5분 뒤...
1학년 네 개 반 학생들이 전부 자기 교실을 찾아갔다.



그래도 학교 이야기의 최고는 어떤 영어과 출신 선배가 2학년때 교지에 쓴 게 최고겠습니다.
선생님들 이름의 총동원이었지요.
2006/11/11 11:50 2006/11/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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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케이루스 2006/11/11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저에게는 저렇게 이야기를 해주시는 선생님은.. 한 분도 없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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